간략한 역사

초기 역사
전설에 의하면 수마트라의 왕자 Sang Nila Utama가 이 지역을 탐험 하던 도중 멀리 수평선 너머로 한 섬을 발견하고는 수행한 신하에게 섬의 이름을 물으니 Temasek이라 대답했다는 기록이 전해 집니다. 일행이 섬에 올라 한마리의 사자와 조우하게 되는데 그 연고로 왕자는 그 섬을 Singapura ( 사자의 도시) 라 명명 하였고, 그 이름에서 현재의 싱가폴이 유래하게 되었습니다. 강력한 수마트라의 Srivijaya 제국하에 싱가폴은 교역항으로 떠 올랐고 13세기에는 자바의 Majapahit제국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근대 싱가폴 태동
18세기 이전부터 영국은 말라카 해협에 주둔 하면서 중국과 인도를 오가며 교역하는 상선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으나 마침내 1819년 싱가폴의 실질적인 통치자 였던 Sultan Hussein 과 Raffles 경이 정식 조약을 맺으면서 교역소를 설치하게 되는데 50년이 지나지 않아 싱가폴 교역 총 수입이 페낭을 앞지르게 되고 1824년 두 번째 조약에서 Sultan은 늘어난 현금 수입에 대한 답례로 영국에게 섬을 완전히 양도하게 되었습니다.
식민지 시대
1826년 싱가폴, 말레이시아, 페낭은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며 1832년 싱가폴은 통치기반의 중심부가 되고 1867년에 런던 소재 식민 사무국의 직할 식민지가 됩니다. 1869년 수에즈 운하의 개통과 함께 싱가폴은 유럽과 동아시아를 운항하는 선박들의 주요 거점 항구가 되었고 특히 1870년대 이후 고무 산업의 발달로 수출 중심 항구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873년에서 1913년 사이에 무려 8배에 달하는 전례없는 번영과 성장을 누리게 되었고 관세 자율항이라는 잇점 때문에 중국과 인도로부터 수 천의 이민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영국 식민시대에 시작된 싱가폴의 번영은 20세기끼지 계속 되었으나 1941년 일본 침략으로 상황은 급변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은 일본이 바다쪽에서 공격할 것으로 예측하고 방어망을 펼쳤으나 반대로 말레이 반도를 통과하여 후방에서 공격한 일본에게 공격 당함으로서 1942년 2월 항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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